많은 것을 접해보았다. 경영학, 통계학, 데이터 분석, 컴퓨터공학, 그리고 스타트업.
나는 데이터과학자도 되고 싶었고, 데이터베이스 관리자도 되고 싶었고, 프로덕트 매니저도 되고 싶었고, 창업도 해보고 싶었다. 열거한 모든 직업들이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은 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특히 스타트업 회사를 다녀보니 정말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깨달은 것은 내겐 기술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겐 기술력이 없다. 그래서 나는 말이 많아 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내가 직접 해보기보다는 개발자에 의지했어야 했다.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해 나는 교묘한 말로 개발자에게 일을 시켰다. 왜냐하면 내겐 기술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싶은 욕심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나 자신을 되돌아보긴 했지만, 내가 잘 했던 것만 돌아봤다. 그리고 그 잘했던 것 중에서 특히 운이 좋아서 두각을 드러낸 몇 가지만 나는 되돌아보았다.
"여기서 상도 타고 여기에선 자격증도 얻고 그리고 인턴도 해봤으니 나는 충분히 자격이 있을거야!"
하지만, 나는 내 마음 속에 있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넌 뭘 잘하는데? 너는 무엇을 하고 싶은데?"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고, '나의 스텟은 한 개에 몰빵되어 있는 게 아니라 여러가지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으니까 나는 분명 현대사회에서 꼭 필요로하는 인재일거야! ' 라고 포장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 골고루 분포된 스텟은 학부 프로젝트의 팀장을 맡아서 멋진 프로젝트를 발표할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실력이 대기업에 갈만한 스텟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기업에서는 이런 포지션을 뽑지 않으니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지원해서 서류 탈락으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대기업이 나를 뽑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학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를 현업에서 쓰는 것은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프로덕트는 매우 거대하고 복잡해서, 세부적인 파트를 담당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된다. 그에 비해서 내가 지금까지 해본 프로젝트들은 내가 중간에 그만두거나, 유지보수를 전혀 해보지 않은, 말 그대로 '토이'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그런 프로젝트가 많이 쌓일수록 나는 3개월짜리 경력이 무수히 쌓일 뿐이었다. 물론 한 개의 프로젝트를 해보는 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근본적인 발전은, 내가 깊게 파고들고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이뤄진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경험주의자였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는 것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되겠지? 많은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은 내게 도움이 될거야! 라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는 여러가지를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를 몰두하기 싫었던 것이다. 사실 데이터 분석이나 데이터베이스나 프런트엔드 개발이나, 학부과정에서 내가 스스로 해보면서, '아 여기서부터는 너무 깊어서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라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즉, 어떤 분야든 '아 여기서 부터는 너무 깊으니까 이제 그만 들어가야겠다.'라는 순간이 온다. 나는 딱 그 지점에서 항상 뒤돌아서 새로운 것을 찾았던 것 같다. 이제는 한 가지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텀을 내 인생 최대로 한번 늘려보기로 했다.
4년 전, 2018년 1월. 나는 편입이라는 큰 도전을 했다. 그리고 그 도전은 1년짜리 도전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집약적이고 깊은 발전을 이뤘다. 편입영어를 통한 영어실력뿐만 아니라, 내 인생 전반으로 극적인 발전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가지 것에 몰두했던 경험이었다. 1년 동안 나는 잠도 줄이고, 하루엔 순 공부시간 10시간을 넘게 찍어보고, 영어 단어를 외우다가 기절하듯 잠들기도 하고, 너무 시험에 몰두한 나머지 탈모증세와 치질까지 걸렸었다. 그만큼 나는 이 편입시험에 거의 미쳐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1년이기에 가능했다. 즉, 내가 만약 이 시험을 1년이 아니라 3년 또는 5년을 준비한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조금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길게 계획해 본 도전은 이 1년짜리 도전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준비하는 것이 3년짜리 도전이라면? 5년짜리 도전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더 진지하게 내 삶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나는 3년 안에 시니어 개발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나는 나의 삶 전체를 손봐야 한다. 그 시작은, 나의 삶을 지속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나는 몇 시에 일어나는가. 나는 몇시에 잠이 드는가? 나는 누구를 만나는가? 나는 어떻게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가?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언제 불행함을 느끼는가? 나는 언제 행복감을 느끼는가? 이런 질문들이 철학적인 질문이 아니라, 나의 삶의 현황을 나타내는 지표들이다. 나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찬찬히 뜯어보는 것이다.
나는 이번에 '제로베이스 - 백엔드 스쿨'이라는 부트캠프에 입교했다. 기간은 2022년 7월부터 12월까지 총 6개월 과정의 여정이다. 하지만 내게 이 6개월은 밑그림을 그리는 시기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이 6개월은 6개월짜리 프로젝트를 위한 기간이 아니라, 3년짜리 프로젝트를 위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6개월을 내가 놓쳤던 많은 부분들을 곱씹고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 더 집중을 하기로 했다. 내가 실제로 코딩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19년이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나는 내가 부족한 점을 더 깊게 파지 않고 그냥 넘어갔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럴 시기가 지났다. 그 시기는 "진로탐색"이라는 멋진 명목으로 커버할 수 있지만, 이제는 진지하게 내가 부족한 점을 메꾸고 개발자의 길로 나는 천천히 걸어가 보기로 했다. 6개월 후에 내가 어떤 회사에 입사하는 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운이 좋아 6개월 만에 대기업에 입사한다고 해서 나의 목표가 끝난 것은 아니다. 나는 긴 호흡으로 이 개발자의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가 보기로 했다.
시니어 개발자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시니어 개발자는, 기업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에 얽매이지 않고 실력을 바탕으로 대화하고 일을 해나가는 개발자이다. 실력이 좋으면 무리한 요구더라도 해낼 수 있기 때문에 억울하지 않다. 실력이 좋으면 회사가 작더라도 스스로 성장하면서 회사의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살아보기로 했다.
언젠가는 나의 실력이 거대한 프로덕트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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